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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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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석주명 (송도고등보통학교)

직업 나비학자,만국인시류학회 정회원

졸업회수 7회

졸업연도 1926년

주요경력

학력: 송도고등보통학교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 
      경성제국대학 
 경력
 1946   ~      국립과학박물관 동물학부장
 1945   ~      수원농사시험장 병리곤충부장
 1943   ~      제주도 방언 연구
 1943   ~      경성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 소장
 1940   ~      미국 인시류학회 가입
   ~      하버드대 바버 박사의 원조로 연구활동
   ~      나비 표본 수집하여 미국박물관과 교환
 1930   ~      송도중학교 생물교사 부임
1950.10.6 사망

남기는 글

[조선일보]  [한국 과학의 선구자들] 하버드·스미스소니언도 후원… 조선 自然史 세계에 알린 르네상스인 - 2024.03.06

 

[동아사이언스] 석주명은 나비 ‘박사'가 아니었다? - 2023.06.10

 

[한국의 르네상스인 석주명]을 펴낸 윤용택 저자 인터뷰 2018.11.01



제주학회, '석주명의 삶과 학문세계' 전국 학술대회 개최 [헤드라인제주-2018.10.10]


[오늘의 인물] 조선산 나비 총목록 '석주명' - 2014.10.06
1940년 영국 대영박물관의 지원으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을 출간하여 당시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나비학 관련 분야에서 최고라 일컬어졌던 석주명이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였다.


헬로우키즈 # 한국의 위인 09 # 석주명  게시일: 2014. 4. 9.



세계적인 나비학자 석주명(월간마음수련 - 2014.04.01)
세계적인 나비학자 석주명(1908~1950). 그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나비들의 가짓수를 정하고, 이름을 지어준 나비 분류 학자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외국인들이 그보다 50년 앞서 한국 나비를 연구하면서 범한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점이다. 42년이란 짧은 생애 동안 75만여 마리의 나비를 연구하면서 남긴 논문만도 128편.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열한 노력과 열정의 결과였다.


석주명  게시일: 2013. 2. 25.



'곤충채집 숙제' 만든 '나비 박사' 석주명 (한국경제- 2012.10.05)
1931년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돌아온 그는 20년간 75만여마리의 나비를 채집하고 128편의 논문을 썼다. 학교 방학숙제 ‘곤충채집’은 그에게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 나비를 248종으로 분류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은 한국인 저서 최초로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됐다.

나비박사 석주명 (박상률  사계절 - 2011.06.08)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비 연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나라 사랑의 길을 몸소 실천한 나비 박사 석주명의 일관된 삶의 정신을 배웁니다.

석주명 : 열정의 나비박사 (이병철, 작은씨앗 발행:2010.10.06)
이 나라의 암흑기에 태어나 조선인으로 세계에 명성을 날린 나비 연구가 석주명의 삶을 알리기 위한 책이다. 석주명 선생은 1940년 [A Synonymic List of Butteflies Korea 조선산 나비 총목록]이라는 영문 저서를 써서 그때까지 세계의 동물학자들이 잘못해온 동물 분류와 학명 짓기 관행을 바로잡았다. 또한 60만 마리나 되는 나비를 채집하고 일일이 측정해서 알아낸 ‘변이곡선’ 이론을 발표하여 석주명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과학의향기] 총 앞에서도 "나비" 외친 석주명 (중앙일보-2006.05.25)
조선의 나비들에게 '이름(학명)'과 '주소(분포도)'를 찾아주는 데 일생을 헌신했던 석주명. 그는 우리 현대사 초창기의 몇 안 되는 별 중 하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나비 박사'라 부른다.

나비박사 석주명의 과학나라(출판사: 현암사 - 2002.03.31)
석주명은 과학적인 학문 연구 방법이 미처 알려지지도 않았고, 연구 자료조차 변변치 못했던 시기에 나비를 직접 채집해 한국산 나비의 학명과 분포지를 체계있게 분류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부는 석주명의 일대기이고, 2부와 3부에서는 꽃, 풀, 뱀, 나비, 호랑이 등 온갖 자연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 있게 펼쳐진다.

[동아일보](1989.12.19)-나비연구 42년 집념의 삶 조명 이병철 著(저) 석주명 평전

[교원전집-솔루토이인물] 22권. 나비 박사 석주명-나비에 대해 알아봐요

위키백과
석주명(石宙明,
1908년 10월 17일 ~ 1950년 10월 6일)은 대한민국나비 연구가이자 생물학자, 곤충학자, 동물학자, 언어학자, 박물학자, 제주도연구가이다. 본관은 광주(廣州).

나무위키
한국의
나비 연구가이자 생물학자, 곤충학자, 동물학자, 언어학자, 박물학자.
희대의
근성
남이자, 자칫하면 일본에게 빼앗겼을 한국의 생물분류를 주도한 한국 박물학계의 선구자


오늘의 위인 석주명(1908.11.13~1950.10.06)
1908년 평안 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석주명 선생은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나비에 관한 책을 많이 썼다. 그 중에서도 1940년에 낸 나비에 관한 책은 영국 왕립 학회 도서관에 소장될 정도로 아주 유명한 책이다. 이로 인해 세계에 30여 명밖에 안 되는 세계 나비 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뮌헨의 독일박물관에는 ‘명예의 방’(Ehrensaal)이 있다. 독일을 빛낸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여주는 곳이다. 거기에는 코페르니쿠스도 있다. 이 유명한 천문학자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도시 토룬에서 태어났지만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은 그를 폴란드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번주말 문을 여는 국립과천과학관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새로 단장해 선을 보인다. 과학기술부가 2003년 시작한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과학기술자 선정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맡고 있다. 올해 스물다섯 번째로 석주명이 뽑혔고 한 달 공고기간에 이의 제기가 없어 확정되었다.

석주명(1908∼50)은 평양에서 태어나 개성 송도고보를 거쳐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함흥 영생고보와 모교에서 박물(생물)을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일한 13년 동안 나비 연구에 전력투구했다. 그 전에 한국 나비 연구는 주로 외국 학자들이 했는데 많지 않은 표본을 근거로 신종으로 단정한 경우가 많았다. 석주명은 온나라를 누비며 75만 표본을 조사해 통계처리를 함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연구결과를 바로잡았다. 그의 연구로 한국 나비의 학명 가운데 같은 종이면서 이름이 다른 844개가 퇴출되었다. 초급대학밖에 못 다닌 식민지 교사가 제국대학 교수들의 연구를 격파하자 석주명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석주명의 연구 결과 한국 나비는 255종으로 정리되었다.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부는 1940년 그의 영문 단행본 <한국 나비의 동종이명 목록>을 냈다. 석주명은 ‘나비박사’로 불리는 명사가 되었고, 자비·후원금 외에 미국·일본의 연구비를 받아 1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97편이 송도고보에 재직하던 11년 동안에 나왔다. 문만용 박사(전북대)는 석주명의 나비분류학을 심층 분석한 석사논문(1997)에서 석주명의 나비 연구를 세 단계로 나눈다. 석주명은 단순한 목록 작성에서 출발해 개체변이 연구로 넘어갔으며 분포 연구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제 인식, 방법론 정립, 종합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석주명이 분류학을 생물지리학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인문학에 접목시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석주명은 연구대상을 철저히 ‘조선’의 나비로 한정했다. 외국 나비에 관한 논문도 썼지만 어디까지나 한국 나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적 생물학’도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적 생물학은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적 탐구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문집들에서 나비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내 분석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19세기에 평생 나비를 그린 남계우를 연구해 ‘조선 사람의 곤충학’으로 소개했다. 더욱이 나비의 우리말 이름 짓기에 열중하면서 빠져 들어간 석주명의 방언 연구는 국어학계의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광복 직전까지 경성제대 부설 생약연구소 제주시험장에서 2년 근무하면서 이룬 제주에 관한 생물·언어·인구·역사학적인 연구는 석주명을 ‘제주학’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인도 물리학자 찬드라세카라 라만은 국내에서 한 연구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석주명은 일본 유학을 했지만 진짜 토종 과학자였다. 그의 ‘조선적 생물학’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의 맥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국학 연구자로서의 석주명을 굳혔다. 2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석주명이 한 작업은 오늘날 과학의 토착화를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석주명이 한국전쟁에서 42살 한창때 삶을 마감한 것은 애통한 일이다. 2010년 석주명의 60주기에는 그의 흉상이 있는 서귀포에서 큰 학술잔치가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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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최규남 (송도고등보통학교)

직업 이학박사, 1대 총동창회장

졸업회수 1회

졸업연도 1918년

주요경력

학력  ~  1918  송도고 졸업
    ~  1926  연희전문학교 수물과 졸업
    ~  1929.6  미국 웨슬리안대 졸업
    ~  1932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물리학 박사
    ~  1957  미국 웨슬리교대 대학원 명예이학 박사
    ~  1967  연세대 명예이학 박사
경력
 1932  ~     미국 물리학회 정회원
 1945  ~     경성대학 이공학부 부장서리
 1947  ~     서울대 교수, 교무처장
 1948  ~     문교부 과학교육 관장 ,대한과학기술원관장
 1951.9  ~  1956.6  제5대 서울대 총장
 1951  ~     물리학회 회장
 1952.5  ~  1956.8  제3,4대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1956.6  ~  1957.11  제5대 문교부 장관
 1960  ~  1961  5대 민의원
 1962  ~     3.1문화재단 이사
 1965  ~     인하대 공대 이사장
 1965  ~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
 1965  ~  1992.4  학술원 종신회원(물리학)
 1965  ~     기상협회 회장
 1965  ~     5.16민족상 고문
 1967  ~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1968  ~     대한교육연합회 명예회장
 1972  ~     서울대 평의원회 의장 
 1975  ~     구국동지회 회장
 1979  ~     회림육영재단 이사장 
 1981  ~     과학기술원 고문 
 1989  ~     학술원 물리학 회원

남기는 글

[조선일보] 야구스타에서 물리학자로… 달 탐사·드론·로켓 알린 ‘과학 에이스’ - 2024.01.24

[조선일보]  [모던 경성]1930년대式 연애의 방법- 2023.11.25

 

[인물과학사](2011.11.30) - 박성래 책과함께 

[중앙일보](2002.04.25) - 1927년 渡美… 청소부하며 학위 6·25때 한국물리학회 창설

[매일경제](1992.05.15) - 實事求是(실사구시) 충실했던 선비

[MBC뉴스](1992.04.27) - ● 앵커: 서울대총장과 5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최규남 박사가 오늘 새벽 5시 향년 95세를 일기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매일경제](1985.06.07) - 나의 골프 이력(최규남 박사)

[경향신문](1972.05.27) - 내가 겪은 이십세기 묻혔던 생애비화 후세에 남기련다

[위키백과] -  최규남(崔奎南, 1898년 1월 26일 ~ 1992년 4월 27일)은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정무직공무원, 대학 교수이다. 제5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관은 경주(). 호는 동운(). 서울 출생. 1926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베커(Becker,J.) 교수의 추천에 의하여 이듬해 미국 오하이오주의 웨슬리안대학에 유학하여 1929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두산벡과]
한국의 물리학자. 이학박사. 서울대학 교수및 총장, 물리학회장,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문교부장관, 국회의원,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 인하공과대학 이사장, 학술원 종신회원(물리학), 기상협회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총장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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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고광혁

직업 제24대 총동창회장

졸업회수 62회

졸업연도 1982년

남기는 글

2024년 甲辰年
새 해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이 다 이뤄지시길 기원합니다.

2024년은
모교 개교118주년,
총동창회 회장단이
60대 기수로의 처음을 여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번에 총동창회장직을 맡게된 62회 고광혁입니다.

그동안 우리 선후배 동문들의 매사에 진심어린 협조와 도움이 있어 왔기에 이런 소중한 역할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생각하며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62회 기수 대표로 회장단의 총동회장직을 맡지만 앞으로 총동창회 발전을 위한 역할은 지금껏 함께한 우리 선후배 동문들의 협조와 참여가 더 중요한 때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여러 동창회 활동 역할을 해 오면서 느낀점을 바탕으로 가장 중요한 점이
"관심과 참여"란 생각입니다.

자세한 활동 내용은 함께 하면서 더 많은 소통과 협력을 통해 이뤄 가기를 희망합니다.

"누구나 좋은 동반자를 원하지면,
나부터 더 좋은 동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해온 소중한 동문 여러분들과 앞으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더 좋은 날은 지금부터
더 좋은 동반자들과 함께
더 좋은 총동창회를 위해
순수한 봉사와 헌신의 정신으로
동문 선후배의 친목과 총동창회 발전을 향해 함께해 나가겠습니다.

2024.1.1

-제24대 송도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고광혁
사무국장 정 훈 배상

 

 

 고 광 혁(62회)동문은 현재 송도6070회장이며 인재양성을 위해 헌신하는 송도중학교 교사로서
또한 모교의 중요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바쁜 가운데에도 남다른 교육열과 사명감으로
지난 2월24일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경사가 있었다.
이후 실력과 능력이 인정되어 인하대학교의 겸임교수로 출강하는 등 이후 한국의 교육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는 거성으로 자리 할 것이라 믿는다.
[논문주제] “A Study on the Relationshipamong Principal's Servant Leadership,
Teacher's Efficacy, School Organizational Commitment, and School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학교장의 서번트 리더쉽, 교사효능감,학교조직몰입 및 학교조직효과성 간의 관계“의 연구주제로 교육학 박사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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